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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배수설비의 암흑시대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21-05-03 조회수 2663

The history of plumbing에서는 로마멸망 후 천 년을 “급배수설비의 암흑(暗黑)시대”로 기록하고 있다.

(사실 이 시기는 급배수설비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로마(BC1400~AD395)의 멸망 후에도 그 명맥을 이어 보고자 했던 서로마(~AD476)가 있었지만 결국 얼마 가지 못했다.
 

왜 로마 멸망 후 천년동안 급배수설비의 암흑시대를 맞게 되었는가?
로마의 찬란했던 물질문명 때문이다. 

로마 권력가들과 지식층이 모여 살았던 메트로폴리탄의 주택이나 건물의 내부 급배수배관은 전부 동(Copper)이었으며,

오늘날의 종합 경기장과 같았던 수 많은 원형경기장의 벽체, 기둥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여러 가지 장식품이나 유명인의 흉상들은

모두 청동제였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마의 수많은 유적지 가운데서, 특히 눈에띄는 것은 대중이 모여 여러가지 경기를 관람했던 원형 경기장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화려하고 거대하게 건설됬던 것들인데, 남아있는 것은  흉측한 모습의 담벼락 이다. 

담벽이나 기둥에 붙어있던 장식물들이 전부 없어지고 파 헤쳐진 구멍만이 남아있다.

이곳이 과연 그 옜날의 영화(榮華)를 누렸던 곳이었단 말인가를 자문 했었을 것이다. 


로마가 멸망하여 통치자가 없어지자 변방의 Goths, Vandal 족들이 로마에 입성하여 전 도시를 약탈 했다.

당연이 궁궐같은 주인이 없어진 공공건물이 첫번째 목표였다.

귀금속과 같이 값어치 있는 물건들은 모두가 약탈의 대상이 되었다. 

나중에는 시설물의 동 제품, 이를테면 급수관으로써의 동관, 청동으로 만든 수도꼭지 ,밸브 등도 제외는 아니었다.


아마 야만족의 약탈행위를 보고, 남에게 빼앗기느니 우리가 가지자며 로마인들이 가세했었는 수도 있다.

이렇게 파괴된 도시는 로마 뿐만아니라 당시의 주요 도시는 대부분이 똑같은 사정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 공급시설은 물론 건물내 배관과 기구가 뜯겨저 나가고  망가졌는데 급배수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또 로마가 멸망한 후, 각처에서 민족간 또는 영토 내에서 권력투쟁을 계속하는 동안에는 정치와 군사적인 일만이 중요할뿐,

상하수도 같은 편의시설에 관심을 돌렸을 리 없다. 

상수도는 원래 시설이 방대하므로, 국가와 같은 절대적인 힘을 가지지 않고서는 대대적인 개 보수가 불가능한 분야이다.

그러니 압흑시대는 불가피 했던 것이다. 


로마가 없어진 후 유럽의 여러 나라가 각각 국가로써의 형태를 갗추게 된 시기가 15세기 들어서이고  
1582년 런던에 로마제국의 멸망 후 끊어졌던 수도가 다시 건설되었으니 
천 년(10 세기)이라는 계산은 틀린 것이 아니다.


이런 형태로 중세에 들어 물의 오염에 기인하는 수 십차례의 전염병으로 수천 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경험을 하고 나서,

비로서 상하수도의 과학화를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19세기 즉  현대에 들어와서 급배수설비의 이론적, 기술적인 확립을 보게 되었으니,

아주 많이 늦은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늦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다행스러울 뿐이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걸려서 이룩한 문화라도 

이를 파괴시키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복구는 신설보다 훨씬 어렵다.


잘 되어 있는 급배수설비라도 

오염을 방지하는 등, 올바르게 유지관리를 하지 않으면 우리라고 재앙을 겪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

또 언제 암흑시대가 되돌아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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