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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쥬의 교훈과 최 부잣집의 철학
   글쓴이 관리자 작성일 2007-06-01 조회수 3342

노블리스 오블리쥬(Noblesse Oblige)
귀족의 역사가 긴 유럽사회에서 유래된 것으로, 정당하게 대접을 받으려면 명예만큼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귀족 가문의 전통적인
家訓이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터에 앞장서 나가는 기사도 정신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오늘날 유럽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리이다.

인류역사상 1000년을 유지했던 나라는 서양에서의 로마와 동양에서의 신라뿐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가 길어야 200~300년 이었음에 비하면 신라 1000년은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과연 신라는 어떻게 100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정통한 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신라의 역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경주의
校洞 위치한 名家『최 부잣집』이 무려 300년 동안이나 만석꾼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

즉 상생(相生), 적선(積善), 보시(普施)가 바로 그 답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이 없었다면 신라가 어떻게 1000년을 유지하고, 경주 최 부잣집이 어떻게 300년 동안이나 만석꾼으로 살 수 있었겠는가?
신라 1000년의 정신이 최 부잣집에 면면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최 부잣집의 사랑채와 행랑채는 수많은 적선과 보시가 이루어졌던 곳이라고 한다.
최 부잣집의 정신 가운데 하나가 과객(
過客)을 후하게 대접하라는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랑채와 행랑채까지 사람이 꽉 차면 100명까지 들어갈 수 있고, 일일 평균 80~90명의 손님이 1년 내내 최 부잣집에 상주했다는 이야기이다.
찾아온 과객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여 주는데 연간 일천여 가마, 하루 약 2.5 가마의 쌀이 소비되었다.

또 사랑채에는 쌀 뒤주가 하나 있었는데, 이것은 묶고 있던 과객들이 집을 떠날 때 비상식량으로 필요한 만큼 퍼가도록 함이었다.
대접받은 과객들이 어찌 최 부잣집의 인품과 덕망을 칭송하지 않을 것인가.

그래서 경주 최 부잣집의 전설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우리사회에도 일류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기업이나 조직은 많다.
그러나 명성만큼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지 말고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교훈을 조금만 실천해도 잃어버린 품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永浩/씨엔티코퍼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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